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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청계천로] 전태일 기념관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전태일 기념관이 있다고 하여 한달음에 찾아가 보았어요.

그치만, 이 이야기는 쉽게 꺼내기 어려울 것 같아요.

엘리베이터에 오르기 전에 먼저 층별 안내부터 보시죠.
마중터에서는 가정의 달을 맞아 다양한 행사가 진행 중이었어요.
입구에 어떤 화가님이 캐리커쳐를 무료로 그려주고 계셨는데, 일정에 쫓겨서 놓쳐버린 게 못내 아쉽네요.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3층 전시관입니다.

그곳엔 첫출근에 설레어하던 어느 평범한 청년의 기록이 빼곡히 있었습니다.

그 설렘이 채 가시기도 전에 평화시장에서 그가 마주한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녹록지 않아 보입니다.

열악한 작업 환경 속에서 종일 구부리고 봉제 일을 하던 소녀들은 갖가지 질환을 앓고 있었지요.

그런 곳에서 단 하루를 보내기도 끔찍할 것 같지만…

혹여나 직장에서 잘리기라도 할까봐 질병을 숨겨가며, 그곳을 떠나지 못했던 소녀들이었습니다.

그 자신도 몹시 힘들었으면서 자신의 차비로 동생들에게 풀빵을 나누어 주느라 먼길을 돌아가야 했던 전태일.

전태일의 퇴근길입니다.

그러다 보니 통금시간에 걸려서 파출소에도 자주 드나들었다는군요.

너무도 당연한 근로기준법인데, 그 당시에만 해도 지키는 곳이 얼마나 되었을까요?

역사의 시간은 우리가 잘 아는 그 결말을 향해 황급히 치달아 갑니다.
가슴 속에 지니고만 있기에는 너무 뜨거웠던 불꽃이 화학 작용을 통해 발화했어요.

그를 추모하는 방문객들의 전시입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추서된 훈장.

제가 좋아하는 구절을 끝으로 기념관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전태일 이전에도 전태일 이후에도 억압과 착취에 항거하면서 목숨을 끊은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역사에 전태일만큼 뚜렷한 각인을 남기지는 못했다. 전태일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어린 여성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분신했다. 그는 평화시장 노동자들 가운데 급여수준이 가장 높은 재단사였다. 다른 유능한 재단사들은 돈을 모아 양복점을 내고 사장이 되는 것을 꿈꾸었고 실제 그렇게 한 사람이 많았다. 타인의 생명과 건강과 복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결한 행위다. 그런데 전태일을 분신하게 한 것은 어떤 이념이 아니라 어리고 약한 이웃에 대한 연민이었다. 그가 남긴 일기는 그 자신도 어리고 약한 존재였음을 보여준다. 어리고 약한 스물두 살 청년 노동자가 더 어리고 더 약한 여성 노동자들을 위해 목숨을 버린 행위가 수많은 국민의 영혼을 울렸다. 그는 한국 사회가 빈곤과 억압, 착취와 인권유린에 고통받는 거대한 노동자 집단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드러내 보였으며, 대한민국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 유시민, 나의 한국 현대사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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